[창간 35주년 기획] 중대재해처벌법 과연 실효성 있나… ‘과잉 입법’ 논란
[창간 35주년 기획] 중대재해처벌법 과연 실효성 있나… ‘과잉 입법’ 논란
  • 이헌규 기자
  • 승인 2021.03.29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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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예방 필요하나 처벌 수위 너무 높아
사업주나 원청 책임 의무 범위 모호
기업 “형법 책임주의 원칙 위배 ‘연좌제’”
전문가 “처벌만이 능사 아냐…논의 필요”

(건설타임즈) 이헌규 기자=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기업의 목줄을 옥죄고 있다. 특히 타 산업과는 달리 근로자들의 안전사고 발생 노출이 큰 건설업계에서는 “자칫 범법자 양산이란 동전 양면과 같은 처벌법”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법안의 수위와 처벌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 건설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 “사업주·경영자 형사 처벌”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에게 유해 위험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해당 의무 위반으로 인해 중대한 인명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이 형사 처벌을 받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결국 입법취지는 안전사고 발생시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 결과가 아닌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을 갖췄지만 그 기능을 못하거나, 시스템의 부재 등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의미다.

◆산업안전보건법 vs 중대재해법

산안법은 법인을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로 적용하고 사업주는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을 받는다. 
반면 중대재해법은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법 의무 준수 범위가 ‘유해·위험방지’ 수준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산안법은 사망사고 시 사업주에 대한 징역 및 벌금의 하한선이 따로 없지만 중대재해법은 하한선(2~5년 이상 징역, 5000만~5억원 이상 벌금)을 만들어 처벌의 수위를 높였다. 상한선도 산안법 1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중대재해법은 10억원 이하로 높였다.

법인에 대한 처벌도 산안법은 10억원 이하 한도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나 중대재해법은 10억원 이상 30억원 이하로 높였고 가중 처벌의 경우 매출액의 10%까지도 부과할 수 있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책임(3~5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면 중소기업의 경우 파산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

◆법리적 문제 논란

헌법 및 형법 기본 원칙과 원리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모든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는 경영자의 컨트롤이 불가능하지만, 사고 발생시에 대해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형법의 ‘책임주의 원칙’ 위배다. 결국 경영자의 책임과 관리를 벗어난 사고에 대해서도 무조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사업장과 사업주가 다른 경우 단순히 원·하청 관계만으로 중대재해에 대해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연좌제’의 성격을 지닌다는 문제점도 거론된다. 

아울러 사업주나 원청에 부과된 책임 의무 범위가 ‘유해·위험방지’와 ‘안전보건을 위한 관리 등 의무’ 수준으로 그 규정이 매우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생태계를 무시한 채 사고발생 시 누구나 처벌이 가능하게 한 법은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고의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일반적으로 과실이 원인인데 과실범에게 2년 이상의 실형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산업안전보건법 외에도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민법 750조 및 756조 등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법령이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중대재해법을 제정한 자체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재검토 필요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 산안법이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됐지만 건설업 등 주요 업종의 사망사고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주와 법인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 산업재해를 막으려는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후 처벌 강화에 대한 정책 검증이 부족한 만큼 사업주의 처벌 수위를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준으로 올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0~2019년 10년간 전체 산업의 사고재해 사망자는 1만696명이었다. 이 중 건설업 사망자 수는 5336명으로 전 업종 사망자의 48.65%를 차지했다. 또 지난해 1~9월 건설업 사고재해 사망자는 349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3명(3.9%) 늘었다. 

특히 올해 1~2월의 발생한 ‘중대산업재해 발생현황’을 살펴보면 중대재해는 총 89건으로 사망자는 89명, 부상은 11명이었다. 이중 사상자는 총 100명으로 분석 기간을 60일이라고 할 경우 하루에 1.5명, 이틀에 3명이 산업재해를 당한 셈이다. 

또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89곳 중 36곳은 하청 소속 노동자였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43곳(48%), 제조 22곳(25%), 기타 업종 24곳으로 전형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재해 유형별로는 추락사고가 34건(38%)으로 가장 많았고 끼임 15건(17%), 부딪힘 12건(13%), 맞음 8건(9%), 깔림 7건(8%), 무너짐 3건, 폭발·넘어짐·기타 각 2건, 화재·베임·감전·찔림 각 1건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통계는 하청 근로자 사망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안전관리 책임 범위와 처벌 수준을 강화한 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뒤 나타난 결과다. 

산안법 개정으로 지난해부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등 사업주 처벌이 강화됐다. 사망사고시 건설근로자가 안전의무를 모두 이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년 1월 27일 부터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가중 처벌을 받게 된다.

◆해외 선진국 어떻게 하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제정됐다. 법 제정 이후 산업재해와, 재난참사 피해 노동자 시민을 예방하는 변화가 일었다. 

노동 선진국인 영국의 경우는 1970년 이후 획일적 규제에서 벗어나 기업 자율 책임관리 방식으로 안전관리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행정당국은 법위반 적발이나 기소보다는 안전시스템의 점검에 역량을 집중하고 사고 결과에 한해 적합한 책임을 묻고 있다. 

또 영국은 오랜기간 동안 사회·정치적 논의를 거쳐 2007년 법인과실치사법을 제정, 0.70이었던 산재사망만인율을 절반 수준인 0.40으로 감소시켰다. 이 때  형사 처벌보다는 기업의 경각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법인에 대한 벌금을 대폭 강화하고, 사업주 개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도록 규정했다. 호주 역시 2003년 산업 살인법을 제정, 이후 2.30이었던 산재사망만인율이 이듬해에는 2.00으로, 2009년에는 1.90으로 감소됐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아직 11개월 남아 있는 만큼 본 법이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우리나라의 중대재해를 감소시킬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간 논의를 통해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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